알고리즘이 아니라 알고리듬입니다

올바른 외래어 표기법에 대한 상념

2020년 02월 12일

컴퓨터 과학의 방대한 분야들 중에서도 특히 소프트웨어의 기초 지식에 관련해 공부할 때에 국내의 많은 서적과 온라인 자료상에서 흔히 발견하는 잘못된 표기로 "알고리즘"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물론 제대로 알고 계시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이 용어의 올바른 표기법은 "알고리듬"입니다. 비록 언뜻 보기에 양자의 표기는 초성 하나에서만 차이가 있고 대략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이렇게 만연된 "알고리즘"이라는 그릇된 표기의 이면에는 보기보다 상당히 커다란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필자는 국어국문학에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거나 해당 학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면서도 이 문제의식에 대해 깊이 공감하기 때문에 여기에 간단하게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

알고리듬의 철자부터

먼저 알고리듬이라는 단어의 본래 철자를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algorithm

기실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일하는 분들도 의외로 이 단어를 영문자로 쓸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왜냐하면 단어의 길이가 짧지 않고 국문으로 표기하면 "알고리듬"이라는 네 자로 간결하게 적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례 수많은 외래어와 약어가 쏟아져 나오는 IT 분야에서 인기있는 최신의 용어도 아닌 고전적인 이러한 단어를 굳이 원문으로 표기할 이유가 없기도 합니다. 반대로 말해 보자면, 이렇게 기초적이고 빈번하게 등장하는 용어조차도 국문으로 표기할 때에는 대다수가 "알고리즘"이라 잘못 표기하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일단 위 단어에서 표기법상 초점이 되는 부분은 바로 "-thm"이라는 어미(語尾)가 되겠습니다.

이 "-thm"이라는 어미에 대한 바른 표기법이 과연 "-듬"일까요, "-즘"일까요? 한국에서 영어 교육을 받은 분들께서는, 그리고 타 국가에서도 비슷하게 가르치지 않을까 짐작됩니다만 필자가 알지 못하므로 배제하더라도, 아마도 "th"의 일반적인 발음법에 두 가지가 있다는 점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둘 다 국어에 없는 발음이라서 어렵긴 합니다만 대략 "-ㄷ" 또는 "-ㅆ"로 발음된다라는 사실은 상식적인 부분일 것입니다.

즉 algorithm의 "th" 부분을,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발음 기호상으로 유추해 봐도 /ð/ 또는 /θ/ 중의 하나일 것이라는 점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흔히 해당 기호들의 모양을 상형해 "쥐꼬리 발음 드"와 "번데기 발음 쓰"라고 배웠던 바로 그 발음들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 중 정답은 전자인 "쥐꼬리 발음 드"이고 그렇게 때문에 이것이 "m"의 /m/ 발음과 최종 결합되어 "-듬"에 가까운 발음이 되었습니다. 물론 실제 영어에서는 /ðəm/에 가까운 발음이라고 합니다만 어쨌든 한글의 외래어 표기법상으로는 "듬"이 되므로 "알고리듬"이 적절한 표기법이라는 사실에 이론이 있을 수 없습니다.

최악의 경우, algorithm의 "th" 부분이 /θ/로 발음될 것이라고 잘못 짐작한다 해도 이 때에는 "씀"으로 착각하게 되므로 "알고리씀"이라든지 "알고리슴"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따라서 설사 알고리듬을 발음상의 오해로 잘못 표기하는 경우에도 결코 "알고리즘"이라는 결과가 나타날 수는 없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비유컨대 "원 투 쓰리"를 "원 투 즈리"라고 하는 사람이 주변에 없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알고리즘"이라는 틀린 표기가 내포하고 있는 결정적인 문제점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알고리즘이라는 괴표기는 어디서 왔는가

이미 아시는 분들도 계시거니와 이 시점에서 어느덧 짐작하게 되신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되는, 바로 그 문제입니다. 가령 우리는 라디오가 중장년 세대에서 왜 간혹 "라지오"라고 잘못 표기되어 왔는지에 대해 숙지하고 있습니다. 국어의 입장에서는 발음하기 어렵지도 않고 평범해 보이는 라디오지만 이것을 라지오라고 발음해야 하는 이웃나라의 언어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히 언어간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지 절대로 한 언어가 다른 언어에 대해 장단점이나 우열을 가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외래어를 자국어로 발음해야 하는 과정에서 일부 모음과 결합된 /d/ 또는 /ð/를 /ㅈ/에 가깝게 발음하게 되는 언어에서라면, 그것이 결과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고 문자로도 그렇게 표기하면 되는 일입니다.

반면 국어의 입장에서 볼 때에, "알고리즘"이라는 오표기의 진정한 문제점은 그것이 국어적으로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적어도 필자가 알기로는 국내의 어느 지역과 방언 체계를 막론하고 모든 디귿 발음이 불가능해 지읏으로 발음해야 하는 상황은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알고리듬"을 발음할 수 없어 부득이 "알고리즘"으로 발음해야 하는 분이 계신다고 가정해 봐도, 문자적 규칙과 구술적 통용성의 차이를 인정해서 그 표기에 있어서만큼은 "알고리듬"으로 적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도 현재 국내에서 출판되고 있는 전산 분야의 서적들 또는 신문 기사 등에서 "알고리즘"이라고 잘못 표기하고 있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즉 단순히 틀린 정도가 아니라 한국 원어민들 고유의 언어 직관에도 지극히 위배되는 오표기가 범람하면서 그것이 도리어 국어 본연의 유연한 발음 구조와 표기 기능을 손상시키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입니다.

비록 한글이 만능의 언어는 아니지만 적어도 알고리듬을 알고리듬이라 부를 수 없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그런 언어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필자가 연구개발 보고서 또는 제안서와 같은 문서상에 알고리듬이라고 표기하는 경우, 이를 심사하는 분들이 간혹 되물을 때가 있었습니다. "자네는 문서를 제출하기 전에 교정도 한 번 안 하나? 웬 알고리듬이라는 오자가 떡 하니 박혀 있는가? 인순이와 리듬 터치도 아니고 말일세"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네, 적어도 세 번 이상 일어났던 실화입니다. 워낙 알고리즘이라는 오표기가 주류를 차지하다 보니 종종 발생했던 서글픈 일화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번만 다시 생각해 주셨으면

언어는 언중이 만들어 가는 것이지 혹자가 강요하거나 일방적인 기준으로 순화시킬 수 있는 대상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쯤 이러한 상상을 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우리 이세들이 자라나면서, "아빠, 나는 바하 음악의 리즈무가 좋아"라고 말하는 모습을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리즈무? 리듬 말인가..."라며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것이고, 그 이면에서 결코 젊은 세대의 문화와 언어에 대해 마음이 열리기는 커녕 오히려 불유쾌와 불편함이 느껴질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근래에는 공교육에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소프트웨어 교육을 실시하는데, 만약 교과서에는 알고리듬으로 표기되어 있고 아빠는 알고리즘이라는 발음을 고집한다면 그 때에 아이들이 느끼는 괴리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아빠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외래어 발음이 왜 저러실까?'라고 이세들이 갸우뚱하게 되는 그런 일은 되도록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

(참고로 필자는 어릴 적에 인순이와 리듬 터치의 열렬한 팬이었고 지금도 인순이님을 존경합니다. 그 분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인용될 때가 있는 것이지 본래 위와 같은 잘못된 대사에 등장해도 좋을 만한 분은 아님을 밝혀둡니다)